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현재는 과거에 내가 했던 선택에 따른 결과이면서 한편으로는 현재를 바꾸는 것 또한 과거를 어떻게 ‘취사 취사’ 선택하느냐 하는 것. 과거는 후회와 미련과 슬픔의 감정이 샐러드처럼 난잡한 형태다. 우리는 현실을 감당할 수 없을 때마다 그런 향수에 젖은 기억을 꺼내보는데, 가끔은 그 추억에 잠식돼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게 될 때가 있다. 또는 그런 과거에만 매달려 살거나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다. 가령 내가 그때 그 길 이외의 길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게 미련한 사람이거나 순간이거나. 영원히 그때 그 지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에 내가 했던 선택에 따른 결과이면서 한편으로는 현재를 바꾸는 것 또한 과거를 어떻게 ‘취사 취사’ 선택하느냐 하는 것. 과거는 후회와 미련과 슬픔의 감정이 샐러드처럼 난잡한 형태다. 우리는 현실을 감당할 수 없을 때마다 그런 향수에 젖은 기억을 꺼내보는데, 가끔은 그 추억에 잠식돼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게 될 때가 있다. 또는 그런 과거에만 매달려 살거나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다. 가령 내가 그때 그 길 이외의 길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게 미련한 사람이거나 순간이거나. 영원히 그때 그 지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베일리(맥스)는 누들스를 배신하고, 누들스가 평생을 사랑한 데보라를 빼앗기까지 한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베일리와 누들스가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난 장면에서 베일리는 누들스에게 그런 자신을 왜 총으로 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그때 누들스는 잠시 눈을 감고 과거 자신이 베일리와 함께 했던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펼쳐지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설명된다. 내가 해석한 바로는 그 순간에 누들스는 친구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의 감정보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베일리와 함께하며 행복했던 기억만을 취사선택하고 그 지점만을 상기시키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기억을 취사선택한다고 해서 누들스 본인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서 그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전혀 아닌 것 같아. 그는 자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고(오랫동안 본인 스스로는 부정했겠지만) 온갖 나쁜 짓을 해온 누드스 일당에게 이미 미래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들에게는 과거와 쓰라린 현실만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말년에 그들 스스로의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로 베일리와 누드루스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베일리는 누들에게 이제 내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에게 더 이상 기다려질 미래는 없고 오직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친구를 배신하고 자신의 과거를 함께 공유했던 수많은 기억을 버리면서 모은 막대한 재산, 그리고 화려한 집에 살면서도 볼품없이 늙은 그는 언제 죽든,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삶의 목적성을 잃은 듯한 깊은 외로움만 남았다. 베일리는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수도, 그리워할 수도 없다. 베일리는 그의 야망에 물든 미래를 갈취하느라 과거를 스스로 더럽히고 냉정하게 져버린 인물이다. 베일리가 열등감과 욕심에 눈이 멀어 그의 친구를 배신하고 범죄를 저지른 행동은 모두 물질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정작 악행을 일삼으며 얻은 물질적 풍요는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친구들과 함께했던 기억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 그래서 베일리에게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삶이다. 하지만 누드스는 다르다. 물론 누들스도 베일리와 마찬가지로 따돌리고 공갈한 돈과 사람들을 죽이고 강간하는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었지만 베일리와 달리 그는 적어도 우정만은 기억할 수 있는 처지였다. 누들스에게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었고, 어쨌든 적어도 친구들을 배신하지는 않았기에 그 정도 과거는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었던 것…그의 울듯 웃는 듯한 표정의 마지막 장면은 누들스가 씁쓸한 현실은 환각제로 잊어버리지만, 좋은 기억만으로 취사선택된 미화된 과거 속에 남은 여생을 묻어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했다. 현재도 미래도 없는 영원한 과거 속으로 파고드는 삶. 영화에서 베일리(맥스)는 누들스를 배신하고, 누들스가 평생을 사랑한 데보라를 빼앗기까지 한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베일리와 누들스가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난 장면에서 베일리는 누들스에게 그런 자신을 왜 총으로 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그때 누들스는 잠시 눈을 감고 과거 자신이 베일리와 함께 했던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펼쳐지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설명된다. 내가 해석한 바로는 그 순간에 누들스는 친구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의 감정보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베일리와 함께하며 행복했던 기억만을 취사선택하고 그 지점만을 상기시키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기억을 취사선택한다고 해서 누들스 본인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서 그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전혀 아닌 것 같아. 그는 자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고(오랫동안 본인 스스로는 부정했겠지만) 온갖 나쁜 짓을 해온 누드스 일당에게 이미 미래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들에게는 과거와 쓰라린 현실만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말년에 그들 스스로의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로 베일리와 누드루스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베일리는 누들에게 이제 내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에게 더 이상 기다려질 미래는 없고 오직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친구를 배신하고 자신의 과거를 함께 공유했던 수많은 기억을 버리면서 모은 막대한 재산, 그리고 화려한 집에 살면서도 볼품없이 늙은 그는 언제 죽든,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삶의 목적성을 잃은 듯한 깊은 외로움만 남았다. 베일리는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수도, 그리워할 수도 없다. 베일리는 그의 야망에 물든 미래를 갈취하느라 과거를 스스로 더럽히고 냉정하게 져버린 인물이다. 베일리가 열등감과 욕심에 눈이 멀어 그의 친구를 배신하고 범죄를 저지른 행동은 모두 물질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정작 악행을 일삼으며 얻은 물질적 풍요는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친구들과 함께했던 기억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 그래서 베일리에게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삶이다. 하지만 누드스는 다르다. 물론 누들스도 베일리와 마찬가지로 따돌리고 공갈한 돈과 사람들을 죽이고 강간하는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었지만 베일리와 달리 그는 적어도 우정만은 기억할 수 있는 처지였다. 누들스에게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었고, 어쨌든 적어도 친구들을 배신하지는 않았기에 그 정도 과거는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었던 것…그의 울듯 웃는 듯한 표정의 마지막 장면은 누들스가 씁쓸한 현실은 환각제로 잊어버리지만, 좋은 기억만으로 취사선택된 미화된 과거 속에 남은 여생을 묻어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했다. 현재도 미래도 없는 영원한 과거 속으로 파고드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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